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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우수상 _「남기는 만큼이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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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65회 작성일 25-04-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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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수 상-산문학 김필수



남기는 만큼이 손해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은,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다.” 또는

“누구나 다 기회가 있으니 미리 준비 하라.”는 의미다. 이는 평범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 같은 장애인(지체 장애 3급)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을까?


2018년에 영어 교사로 정년퇴직한 후 생활이 너무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져서 고민하다가,

초등학교 교문 앞 안전지킴이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거

아녀도 먹고 살만 한데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고 했지만, 난 어려서부터 장애인으로

자라서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멸시와 사회로부터의 차별 때문에 가슴 아림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되돌려줌으로써, 거기서 느끼는 보람으로 나의

아픔을 치유하고 또 장애인이라서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그 장애를 극복해 내서 오히려

비장애인에게 베풀어 주고, 더 나아가 다른 장애인에게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자” 이런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내 재능을 사회에 다 돌려주지 못하고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면, 남긴 만큼이 손해 아니겠는가?


나는 7살(1962년) 때 독감을 심하게 앓고 난 후 오른쪽 다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1년 반

정도 치료 아닌 치료를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당시 병원도 없고 약방도 없는 시골에서

동네 할아버지한테 침 맞고 풀뿌리나 열매로 지어준 한약을 대려 먹고 낫기만 바라며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마침내 다리가 너무 아파 걸어서 학교에 못 가니까,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업혀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결핵균이 고관절에 침입(골결핵)해서 너무 많이 괴사했기 때문에

약물 치료로는 안 되고 절단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오른쪽 다리와 엉덩이뼈를 잘라내고

유합수술을 했기 때문에 6개월을 입원하고 학교는 1년 쉬어서 7년간 다녔다.


고관절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늘 다리(허리 부분)를 뻗은 채 앉아야 했으니 등받이가 없는

방바닥엔 아예 앉을 수가 없고 또 벽에 기대고 앉는다 해도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서 늘

비스듬히 기댄 채, 반은 앉고 반은 누운 자세를 취했다. 그나마 왼손으론 항상 바닥을 짚어야

해서 왼팔이 오른팔보다 더 굵어졌다. 물론 서 있어도 반듯하게 서지 못하고 앞과 옆으로

구부정한 자세가 된다. 특히 학생 땐 수업 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고, 오른쪽 다리는 가늘고 길이도 짧아서 신발 바닥을 5cm 덧대어 높여서 신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투표로 내가 반장에 선출되었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라며 친구가

나한테 살짝 해 준 말이 가슴에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필수는 다리가 *신이니까 반장을 하면 안 돼. 내년엔 반장 시키면 안 돼.”


친구가 전해준 선생님의 그 말에 그냥 고개만 숙이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몸 성한

다른 학급 반장보다 더 열심히 잘하면 되겠다는 오기로 정말 열심히 활동해서 6학년 땐

전교 어린이회장에도 당선되었다. 그런데 또 학교 대표로 참석하는 시ㆍ군 대회 행사에는

나 말고 다리가 멀쩡한 다른 친구가 참가해서, 그것도 내 가슴에 검푸른 멍으로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크면 꼭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픈 학생이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집이 가난한 학생이나 모두를 다 똑같이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도 많았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 결국은 선생님이

되는 걸 접고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불구자”라고

떨어졌다. (당시 호칭은 장애인이 아니라 불구자였음) 공업학교에서는 기계 관련 실습을

해야 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입학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러 갔다가 일부러 교감 선생님을 찾아뵙고

물어보니, 상업고등학교에선 육체적으로 하는 실습은 없으니까 입학에는 상관 없지만

나중에 취직할 때 은행이나 회사에서 뽑아줄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에서

이런 좌절을 겪게 된 것은 아주 큰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가족들의 희생으로 나 혼자만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고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교육대학교에 원서를 내는데, 초등학교 교사는 체육 수업도 해야 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교육대학교에 입학이 안 되고, 설령 된다 해도 교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체육이나

음악  미술 등을 전담하는 교사가 따로 있으니까 장애인도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담임교사가 혼자서 전 과목을 다 가르쳐야 되니까 나 같은 장애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해되었고 또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4년제 일반대학 영어교육학과를 다니고 교사자격증을 따서 순위고사(현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영어 선생이 되었다. 이때도 병역을 필 했거나 국립사범대학

졸업자만 교사로 임용되고, 나 같은 장애인은 병역면제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임용될 수 있어서 애를 먹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중등학교 교사 임용에 문제가 없는데도 당시에 임용 절차상 병역을 필

해야 하고 또 병역미필일 경우엔 그에 해당하는 사유 즉 진단서 등을 첨부 해야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아주 오래전 어렸을 적에 입원ㆍ치료받았던 내용이라 병력(病歷)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나의 구술로 병력 설명을 듣고 의사가 역으로 진단을 추정해서 진료

내용을 만들어주는 형식으로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암튼 교사 채용 신체검사 상으로는 불합격이지만, 업무상(영어 교사)으로는

직무수행(수업)에 큰 지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서 간신히 합격, 채용되어서 2018년까지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교사가 된 걸 하늘이 준 기회라고 감사히 여기며 평생을, 몸이 아프거나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공부를 못하는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관심과 사랑을 주면서

열심히 가르쳤으니, 이 또한 영광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도움과 가족의 희생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내가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었지만, 나 스스로 넘어가기엔 너무 벅찬 장벽에 부딪혀

좌절과 절망으로 무너져갈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나 자신을 굳게

다잡았고, 특히 사춘기 때의 여러 가지 정신적 좌절감을 극복하고 이겨낸 것은, 정말로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다.


정년퇴임 때 남들이 나보고, 이젠 좀 쉬고 여행이나 다니라고들 했는데 퇴임하고 쉬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특히 나처럼 남의 도움으로

살아온 사람이 그냥 쉬면, 그건 인생에 빚으로 남는 “빚진 인생”이 된다.


그래서 내가 비록 장애로 몸은 불편하지만, 내가 배운 지식과 얻은 재능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떠나야 마땅하다는 신념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청소년센터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또 초등학교 교문에서 안전 지도 즉 안전지킴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 이유다.


청소년지원센터에선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영어 수업, 학습코칭,

생활 상담, 진로 멘토링, 직업체험 서포터즈(알바 학생 관리)로 활동을 했고, 학교에서

의뢰한 어려운 학생을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는 “동반자 상담사” 활동도 했다. 또한 아침

일찍부터 초등학교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 교통안전 지도로 교통순경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한데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 아내는 또 나보고 “동네 창피하게 왜 그런 일을 하냐?”고 지청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은 하찮은 게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성스러운

일”이라고 응수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이고, 그때는 우리가 노년기라서 국가의 부양을 받아야 되는데, 이 아이들이

바로 우리 노후를 책임질 안전한 연금보험이 된다. 언제까지 네 아이 내 아이로 구분해서

키우겠느냐? 이젠 네 아이 내 아이가 따로 없다. 이 아이들이 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건 하찮은 일이 아니라, 우리 미래의

안녕과 희망을 가꾸는 아주 성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당신들도 나를 따라서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라”고 큰소리쳤다.


나는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얼마 전 학폭심의에선

가해 학생이 아주 심각한 내용의 진단서를 제출해서, “나의 장애인 인생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진단서는 보통 피해 학생이 내는데 이상하게 이번엔 가해 학생이 냈고 그 진료

내용은, “정신적 불안증과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행위와 자살행위 지수가 매우 높아서 항시


관찰하고 주의를 해야 하며 약물 치료도 효과가 없어서 지속적인 관찰 및 상담을 요한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학생에게 물어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아주 힘들고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고 또

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더 이상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보호자도

걱정이 많이 되고 또 무슨 치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백방으로 노력 중인데 별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걱정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학폭심의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학생에게 나 자신의 장애 극복 이야기를 해

줬다.

“나는, 다리가 불편해 체육 시간엔 항상 운동장 저쪽 계단에 앉아서 참관만 했고 또

행사 때도 그냥 교실에서 창밖으로 아이들 활동하는 걸 구경만 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부러워하며 항상 기가 죽어있는 소외감으로

학교생활이 엄청 힘들었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문제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이런 어려움을 대신해

주겠느냐? 나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면 결국은 내가 실패하는 것이니,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직접 찾아보자. 그래서 학교에 있는 책을 읽기로 작정하고,

교무실 책장(당시엔 학교에 도서관이 없었음)에 있던 책을 다(400~500권 정도) 읽었는데,

‘학교 책을 다 읽은 학생은 너밖에 없다’고 선생님이 칭찬도 해 주셨다. 그래서 난 책과

친해질 수 있었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될 수 있었으며 지금 이렇게 학폭심의도

하고 있다.

그러니 너도(해당 학생) 너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해결해 주겠냐? 부모님이 해주겠냐, 친구들이 해주겠냐?

너를 위해 대신 극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 스스로가 해야 네 앞날이 밝고

희망적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옆에 앉아 있던 학부모가 눈물을 흘렸고 그 학생도

흐느끼기 시작했는데, “저도 학교 잘 다니고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처럼 이렇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학폭심의위원들은 그 학생이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박수로 격려를 해 주었고 그 학생과 엄마는 90도로 인사를 하고

나갔다.


사실 학폭심의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만, 그날은 그 학생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진행했는데, 학폭심의는 “법적 처벌이 아닌 교육적 효과를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나 자신도 다른 심의위원들도 그리고 해당 학생과 부모도 모두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자격조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난 틈틈이

공부해서 자격증을 12개나 땄다. 물론 자격증은, 교단에 섰기 때문에 교사로서 당연히

따야 되는 것도 있지만, 은퇴하면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딴 것도 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다문화가족에게 한글/한국어 교육을 위한), 전문상담교사 자격증(다문화 자녀와

중도 입국자 학생을 위한), 학부모 지도사 자격증(결혼이주민 가정/부부를 위한),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스피치 지도사 자격증, 프레젠테이션 전문가 자격증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 자격증까지 땄는데, 이런 게 바로 필요할까 해서 일부러 취득한 자격증이다.


지금은 고양시가 주관하는 장애인일자리사업에 2년째 참여하고 있는데, 첫 번째 해엔

도서관에서 사서업무 보조로 일했다. 그런데 책을 서가에 꽂거나 찾을 때 서가 1, 2층은

바닥에 있어서 몸을 많이 구부려야 되는데, 나는 다리를 꾸부릴 수가 없고 또 눈도 침침해서

도서 분류 기호를 읽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 카메라 기능으로 확대해서 읽으며

다른 손으론 서가를 잡고 무릎 꿇고 바닥에 앉아서 간신히 책을 꽂거나 빼내곤 했다. 정말

손이 닿질 않아서 힘들었다.


암튼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려면 컴퓨터 실기시험을 봐야 하는데, 난 만점을 받았다.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도 땄고 SNS 활동도 하니 워드에 익숙해져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는 항상 미리미리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라도 도전하자!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오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우산을 갖고 있는데...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 남기지 말고 다 주고 떠나자, 남기는 만큼이 손해니까.



[이 게시물은 예술누리님에 의해 2025-04-15 09:37:23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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