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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 _「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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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58회 작성일 25-04-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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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선-산문학 이수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아이


“연우야, 내가 누구야?”


“아빠.”


“연우야, 다시 생각해봐. 내가 누구지?”

“선생님.”


질문을 몇 번 반복했지만, 딸 연우는 끝내 ‘엄마’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나의 눈치를

본다.


“엄마잖아, 엄마.”


40개월 무렵까지 연우는 나를 엄마라고 틀림없이 잘 불렀다. 그런데 퇴행이

시작되고부터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부르지

않았다.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그저 허공만 보고 얘기했다. 내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으면

거실에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응가 더 할 거야.”(당시 ‘화장실 가고 싶어요.’를 항상 이렇게

표현했음)라고 얘기하곤 했다.


일단,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 호칭을 부르는 것부터 연습시켰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가까이 다가와서 내 말을 따라 하게 하는 것을 반복했다. 수백 번 연습시켰더니 어느 날부터

인가 나에게 다가와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폐아를 양육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자폐아에게는 태산 같은 과제일 때가 많다. 그

과제를 수백, 수천 번 연습을 통해서 해냈을 때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요구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온 우주를 얻은 듯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아이는 호칭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아빠를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모르는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주변 인물의 사진을 찍어 반복해서 학습을 시키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는 매일 연습을 했으니 아마도 수만 번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아이는 거의 3년이 넘도록 적절한 호칭을 습득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슬펐던 것은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한다는 그 ‘엄마’라는 단어를 내 아이는 왜 잃어버린 걸까. 내가 이토록 사랑을

주었는데, 내 사랑이 어디가 부족했을까? 내가 얼마나 더 사랑을 주어야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까. 아이는 내가 누군지 알긴 아는 걸까?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겠지? ‘엄마’라는 단어에 집착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왜 아이를 낳아놓고도 ‘엄마’라는 말조차 듣지 못하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결국, 생각은 ‘살아서 뭐하나?’에까지 이르렀다. 그 ‘엄마’라는 단어가 안 그래도

한없이 팔랑거리던 종잇장 같은 내 마음을 사정없이 찢어버린 거다. 주위에서 ‘엄마’라는

말을 하는 세 살 꼬마만 봐도 찢긴 내 마음에 한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아픔 속에서 살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연우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연우의

눈 안에는 분명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다.


‘아, 내가 엄마인 걸 알고 있구나.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아이의 눈 속에 들어있는 엄마, 그리고 사랑. 언어로 표현해 내지 않은 아이의 내면세계를

깨닫는 순간 마치 고여 있던 물에 물꼬가 트이듯 나의 생각도 거침없이 흘러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를 ‘엄마’라는 단어로 부르지 못 할 뿐이지,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정작 엄마인 나는 언어라는 도구에 매여 온몸으로 엄마라고 외치고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다. 슬퍼할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니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애쓰고 있지만

잘 안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언어는 인간 사고의 결과물이자, 언어 자체가 사고를

촉진하기도 한다. 나는 언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배웠고, 많이


의식하고 살았다. 언어가 나의 사고를 지배하기도 하고, 사고가 언어를 지배하기도 한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의 세계는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인간의 언어 세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아이는 자기 생각을 우리의 언어에 담을 수 없고, 언어는 이 아이의

세계를 담을 수가 없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언어와 사고의 상관관계가 자폐아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사실을 나는 아이를 관찰하며

점차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든 삼촌이라고 부르든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이에게 나를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적절한 저마다의 호칭이 있다는 걸 끊임없이

훈련시켰다. 아이를 우리 세계로 오게 하는 것과 내가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내가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면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이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아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그 세계에만 둘 수는 없었다. 어쨌든 아이는 우리와 함께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하니까. 끊임없이 아이에게 우리의 언어를 가르치는 일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조급했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 세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조급한 마음에 힘겨웠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준다는 마음가짐은 나의 행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설리반 선생님은 1년 동안 세상 모든 사물에는 고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헬렌켈러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문자를 쓰면서 알려주었다. 헬렌켈러가 관념과 언어의 상관성을

인지하기까지 설리반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없이 알려주었다. 세상 모든 것에 언어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헬렌켈러는 빛의 속도로 빠르게 학습을 시작했다.

또한 이후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 또한 설리반이 태양, 구름, 비 와 같은 자연을

비유하여 헬렌켈러에게 설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언어를

습득하기까지 학생과 스승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고, 그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헬렌켈러와 내 아이의 장애의 종류는 비록 다르지만,

일반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국어 습득이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되새겼다.


내 딸 연우는 이미 머릿속에 관념이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쓰는 언어나 기호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이미 사고가 형성되어 있으니 그것을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끌어내

주면 된다는 것은 아예 사고할 수 없는 아이에게 생각과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그렇게 아이의 모습을 통찰하고 나니, 나는 꽤 괜찮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조급해하지도, 다그치지도 않게 되었다. 더디지만 언젠가는

언어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자폐아인 내 아이를 통해 나는 언어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언어로

자신의 세계와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는 것.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세계가 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를 만나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음을 알고 존중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더욱

겸손하게 해주었다. 반대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그

세계가 언어와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이를 통해 나는 참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로 인해 단단한 내 사고의

틀이 완전히 깨어졌다. 언어 너머의 세계를 인지하고 사는 것은 나의 삶을 보다 폭넓게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사랑, 배려, 관용, 그리고 존중이 들어있다. 나는 오늘도 아이 덕분에

사람과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와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언어는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자폐아인 내 아이가 그렇게 알려

주었다.


[이 게시물은 예술누리님에 의해 2025-04-15 09:36:07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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