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최우수상 _「신호등 앞에서, 복지관 가는 날, 금정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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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시문학 황우남
신호등 앞에서
호계동 사거리 8차선도로 횡단보도
건너편에 모여 있는 사람들
구름 떼처럼 몰려올 기세다
뇌졸중으로 몸과 마음이 불안한 나
균형을 잃은 몸이 두려움으로 떨린다
신호등 바뀌자 사람들 재빠르게 건너온다
중간쯤 건너가는데
누군가 나를 툭 치며 간다
경직된 몸이 넘어질 듯 비틀거리자
교통경찰이 황급히 달려와
감각이 없는 나의 왼팔에 팔짱을 끼고
길동무 되어 건너간다
건너와 두발을 모으고서니
놀란 가슴의 심장 소리가 잦아들어
하얀 줄무늬 횡단보도를
편안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중심이 뒤틀린 다리
좀 흐느적거리면 어떠냐
날마다 주어진 시간을 꿋꿋하게 건너가리라
가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가리라
지나온 횡단보도 한참 바라보니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만 하다
복지관 가는 날
십자 성호를 긋고 10번 버스를 탄다
어젯밤 야근한 사람
게임에 빠진 학생
방지턱에 급커브길
손잡이 꼬옥 잡으세요
머리 위에서 웅웅대는 소리
꽉 쥔 오른손에 푸른 힘줄 돋는다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학생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선다
킥킥대며 고정한 눈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눈을 감는다
나는 창밖으로 허전하게 고개를 돌린다
그때 기사가 한마디 한다
자리 양보 하실 분 안 계십니까
한 학생 엉덩이 들썩이다 일어난다
오늘도
죄지으며 하루를 시작한 날이다
금정역에서
자정으로 치닫는 늦은 밤
어둠 한 줄 끌어안은 전동차가
저 혼자 들썩이고 있다
금정역에 주저앉은 천근 만근 몸뚱이를
잔뜩 웅크리며 눕는다
저 쇠바퀴는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빌딩 숲을 지나
휘황찬란한 불빛을 빠져 나왔으며
하루살이 떼 같은 사람들을 싣고 달렸다
막차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발걸음
한없이 짓누르며 아우성치던 청춘도
겨우 몇 정거장이라고
헐떡이며 등 떠밀려 여기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 준다
두 발 흔들리고
몸이 좀 뒤틀리면 어떠냐
지금 이 어둠의 끝자락도
불과 몇 걸음
다시 건너가야지 곧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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