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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빗소리가 듣기 좋았던 어느 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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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58회 작성일 25-04-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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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작-산문학 김나형


빗소리가 듣기 좋았던 어느 날 밤에


터덜터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 스쳐 지나던 작은 놀이터에서 성준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도 저 아이들 속에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과 상상을 해본다.

‘왜 우리 아이는 그럴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또다시 기분이 울적해졌다. 천사처럼 착한 우리 아들. 우리

아이는 도대체 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걸까. ‘보통’의

아이들과 성준이를 비교하며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저 하늘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막연한 공허함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워버린다.

지금 이 상황들을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 빈 가방을 드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질 정도로 지쳐있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더이상 무엇을 더 하고

싶지 않은 마음만 커질 뿐 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잿빛의 먹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많은 비를 쏟아 낼 것처럼 보였다. 제자리에 멈춰서 멍하니

놀이터의 아이들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신세한탄하고 있던 때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 집에 올 때 마트 들려서 우유 좀 사와.^^ -

아내가 보낸 별 것 아닌 사소한 내용의 문자에 끝 모르던 우울함과 자기연민의 늪에서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해 마트에 들려 우유를 산후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성준이는 거실에서 해맑게

웃으며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즐겁게 뛰어 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며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가족,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내야지...’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소중한 가족. 앞으로 일어날 모든

고통과 고난들은 모두 내가 감당하게 하고, 아내와 아이에게 만큼은 오롯이 행운과 행복,

평안함만이 함께 하길 간절히 바라고 바랄 뿐이다.

“흐아아아아앙~!”

잘 놀다가도 잠잘 시간만 되면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우리 성준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이처럼 서럽게 우는지 알 수가 없다. 한참 동안을 꼭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져주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한참을 말해주어야 우리 천사는 울다 지쳐 겨우 잠이 든다.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디 꿈속에서 만큼은 우리 성준이가 몸과 마음 편안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ᄋᄋ... ᄋᄋ...”

‘분명 어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모두가 잠이든 새벽, 회색빛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보는 어느 어린아이의

목소리. 정확히 누구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분명 그 목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깼다. 평소 이런저런 걱정들과 염려로 신경이 예민했던 터라 자다 말고 갑자기 잠에서

깬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떠한 목소리가 들려 잠에서 깬

것 같은 기분에 신경이 조금 쓰였다.

톡톡 톡 톡톡 톡

밖에선 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작은 물방울들이 우리 집 창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기분 좋은 빗소리는 고요하고 잔잔한 어느 물의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었고,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하하. 빗소리에 잠에서 깬 거였구나.”

아이의 목소리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내 입에서는 실소가 나와 버렸다.

자폐 스펙트럼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성준이가 ‘먼저’ 무어라 말을 한다는 것은 간절히

바라는 희망이고 소원이었지만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너무 간절히 바라다보니

빗소리를 내가 듣고 싶었던 아이의 목소리로 착각해 들렸나보다.

아침 일찍 출근 하려면 다시 잠을 청해야 했지만 이날은 어째선지 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잔 마시고, 소리에 민감한 성준이가 혹여 빗소리에 잠을 못자고

있는 건 아닐까 염려되어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가보았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

보니 역시나 성준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에서 깨어 있었다.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아가,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구나?”

“......”

역시나 성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달 전만 해도 엄마 아빠가 이런 저런 말을

하면 서툴게 조금씩 반향어로 따라 말하곤 했었는데 어째선지 요즘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베개와 이불을 다시 정리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성준아, 아빠 방으로 다시 갈게. 잘자 우리 아가.”

“......”

또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예쁜 함박미소를 보이는 아이.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혼자서도 얌전히 잘 잔다는 것이다. 기분 좋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몸과 마음

평안한 밤이 되길 바라며 방을 나와 문을 닫으려 하던 찰나.

“아바 아바 (아빠 아빠)”

“응?! 어?! 뭐?!”


“아바 아바 쉬~ 쉬~ (아빠 아빠 쉬마려 쉬마려)”

“어! 그래 아빠야 아빠! 지금 아빠라고 말한 거니? 아!~ 쉬마려? 이리와! 이리와!”

덜컥. 자고 있던 아내도 성준이가 서툴게 ‘아바(아빠)’라며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방에서 달려 나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내는 용변을 보고 있는 아이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간절하게 성준이가 스스로 입을 열길

바랐던 사람. 아내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성준이가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 불러주며 무언가를 바란다는 의사표현을 해준 아주

고맙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보통의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는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밝은 내일을 희망할 수 있었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환희의 순간이었다.

더 많은 것이 좋아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다른 이들보다 걸음이 느린 우리 성준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한걸음 내딛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감사했다.

유난히 빗소리가 듣기 좋았던 늦은 가을의 어느 날 밤. 성준이는 스스로의 의지로 나에게

‘아바(아빠)’라 불러주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벅차오르도록 기뻤던 그때의

순간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아이의 ‘발달장애’를 등에 업고 살다 보면 우울감과 자기연민, 피해의식들과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우리의 마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내려놓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좋지 않은 생각들을 할 때마다 아무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의 삶과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며, 이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매순간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또 응원하며 우리는 오늘을 그리고 이 순간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부디 이 세상이 천사 같이 예쁘고 소중한 우리 가여운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고 돌보아주길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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