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 「 그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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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선-산문학 고영미
그 남자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재화다. 전라도 김제에서 감이 익어 갈 즈음에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지적 장애인이다. 어린 날 아버지는 뱀에 물려 세상을 떠나시고 지적능력이
떨어진 남자는 역시 지적능력이 떨어진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남자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학교도 가야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는 키울 능력이 안 되어서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절에 맡겨졌다. 엄마도 마을 사람들도 그나마 절에 가면 먹고 입고 공부도 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랑 헤어진 남자는 5년을 절에서 살았다. 스님 말씀 잘
듣고 성실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건장한 아저씨들이 절에 와서 빵과 과자를 사주며 엄마 만나러
가자는 말에 얼른 따라나섰다. 절에서 나물만 먹다가 처음 먹어 본 과자와 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엄마를 만난다는 기쁨도 잊은 채 달콤한 빵과 과자에 푹 빠지고 말았다. 남자는
지금도 그때 빵 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남자는 아저씨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섰다.
마침내 아저씨들이 데리고 간 곳은 배가 많았고 소금이 많이 있었다. 염전으로 팔려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는 다음 날부터 선장이 시키는 대로 배 청소부터 시작했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부지런한 그 남자는 일을 잘하니 많이 혼나지도 않았다. 배 타고 새우잡이,
고기잡이, 김 작업장,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힘도 좋고 일도 잘하는 남자를
노예로 사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프리미엄까지 붙여가면서 수없이 팔려 다녔다.
월급도 안 주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인신매매 희생자로 살았다.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신매매 주인공이 바로 그 남자 재화다. 방송에서 지적 장애인이
염전에서 학대당한 이야기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세상은 온통 바다뿐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는 절망의 세월을 견디며 악착같이
살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기도 많이 울었고 그때마다 선장에게 들켜 맞을까봐 두려움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복지센터에서 수상하게 여기고 세상에 알려진
날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그런데 그 남자는 웅성웅성한 틈을 타 ‘이때다’ 싶어 함께
일하던 형과 탈출을 했다. 걷고 뛰고 달려서 어느 이름 모를 도시에 도착했다. 돈도 없고
배가 고파서 형과 함께 가방 공장에 들어갔다.
아뿔싸, 신은 그 남자의 편이 아니었다. 그때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좀 더 일찍 엄마를 만날
수 있었고 고생도 덜했을텐데 가방공장에서도 굶지는 않았지만 가혹한 학대는 이어졌다.
남자가 글도 모르고 세상물정을 모르니 돈도 안 주고 학대를 가한 것이다. 궂은일이란 일은
다 했고 매도 엄청 많이 맞았다. 가는 곳마다 월급도 못 받고 일만 했다. 중국집, 폐차장,
식당으로 팔려 다니며 죽어라 일만 했다. 여기 저기 떠돌며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는 남자는
지금도 일을 참 잘한다. 그 뒤로도 월급은 한 푼 도 받지를 못했고 그렇게 서럽고 억울하게
젊은 날을 보냈다.
남자의 인생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갑갑하고 숨이 막히고 저려온다. 그 뒤에 그 남자의
이모가 수소문해서 남자를 찾아봤지만 지적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자신의 생년월일도
정확하게 모르니 찾는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남자는 나이 39살 때 인신매매란 방송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 방송을 통해
엄마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서로 복받쳐 한없이 울었다. 20여년 만에 만난 엄마는 많이 늙어
있었고 걸음도 잘 못 걷는 걸 보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지적능력이 떨어진 엄마는 집도 주고 돈도 준다니까 자기 아들을 잘 먹고 잘 살라고 보낸
것이 인신매매단에 넘기게 된 것이다. 착한 남자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그 길로 따라가 갖은
고생과 학대를 그리움으로 참고 견뎌낸 것이다. 이십여 년 만에 만난 남자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자는 배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약과 주사를 많이 맞으며 살았다. 엄마를
만난 날도 머리는 산발에 눈에 초점이 없었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 길로 엄마랑 이모가 사는 일산 집으로 와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어릴 때 떠났던 남자는 어느새 중년이 되어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며 이따금 살인 미소를 짓는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잘 지내고 있다. 착한 남자는 주위의 노인들,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봉사활동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가 자꾸 정신을 잃어가고
있기에 걱정이 많다. 이모가 평생 엄마를 모시고 사셨는데 몇 해 전 이모도 유방암으로
항암치료하며 투병중이다.
엄마는 아침마다 전화를 하신다. “아가 밥은 먹었냐?” 하루에도 수십번 전화를 하신다.
지난 시간이 트라우마로 남으신 모 양이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건 장애인이 되어
임대아파트로 입주해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지내면서다. 그 남자도
그중 한 명이다. 인물도 훤칠하고 말도 잘해 지적장애인인줄 모를 정도로 언변이 좋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싶다며 히히히 수줍게 웃는 남자의 미소 속에 하얀 새치가 햇살에
반짝인다.
어르신들이나 장애인을 돌볼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네, 누나”
“401동,1506호에 침대 좀 옮겨 달래는데 시간 있어?”
“옛쏠.” 남자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바로 출동한다.
“엘리베이터 탈 때 1하고 5 써있는 거 눌러야 해” “네.”
“모르면 누나한테 전화해”
“오케이” 너스레를 떤다. 그러다 이따금 다시 묻기도 한다.
“누나 몇 눌러요?”
“15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돼.” 혼자 비시시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다. 전화가 안 온다,
이번에는 한 번에 잘 도착한 모양이다. 힘겨운 시간을 꿋꿋하게 잘 이겨내고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남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늘은 406동 할머니 병원 가시는데 휠체어 좀 밀어줘.”
“옛쏠.”
“오케바리.”
“출동.”
이번에도 전화가 없다. 이제 이 남자는 하산해도 좋겠다. 남자의 이름은 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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