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천사들이 사는 마을에는」
페이지 정보

본문
가 작-산문학 고영미
천사들이 사는 마을에는
입춘이 지나, 날이 조금 풀리니 천사들이 총출동해 아침을 깨운다. 시끌벅적한 하루의
시작이다. 8시만 되면 모닝콜처럼 정확히 핸드폰 벨이 울린다. 지적장애 대장인 신영이의
전화다.
“여보세요?”
“응”
“왜?”
“두목님, 식사하셨어요?”
아침마다 똑같은 안부를 묻는다. 천사들과 하루를 깔깔깔 웃으며 시작하고 일과를
정리한다. 이들이 있어 암울한 내 삶이 환해졌다. 내 나이 48살 때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었다. 장애를 입고 좌절하고 있을 때, 순수한 이들을 만나면서 삶의 의욕이
생겼고 활력이 생겨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혼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 3급 56세 신영이. 82세 노모와 단둘이 사는
지적장애 2급 55세 득이. 84세 아버지와 살고 있는 1급 47세 환이.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는 지적장애가 뭔지 잘 몰랐다. 사지가 불편한 사람만 장애인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만나고 나서 홀딱 반한 사건이 있었다. 문화카드 쓰는 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쓰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함께 서점으로 갔다. 문구도 있고 생활용품도 있길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가지고 오라했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더니 잠시 후,
계산대에 올려놓은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정도 지적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신영이는 백설공주 동화책과 스티커를 가지고
왔고 환이는 색칠공부 책과 색연필을 가지고 왔다. 너무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계산을
하고 나왔다. 신영이는 56세 환이는 47세 어른아이였다. 처음 겪어보니 당황했었다. 복지관 앞
벤치에 앉아 신영이는 온종일 백설공주 책에다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고 환이는 색칠
공부를 했다. 그제야 지적능력이 대여섯 살 어린아이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신장애,
신장장애, 뇌병변장애, 지체 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발달장애, 이렇게 장애
유형이 많이 있다는 것도 내가 장애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날 이후, 난 그들을
천사라고 불렀다. 순수한 그들을 만나면서 지적장애가 뭔지 알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은 장애인들이 많이 산다. 그중에 지적장애를 가진 천사들과 생활 하며 일어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우리 마을은 천사들 때문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적장애
1급인 환이는 47세의 어른아이. 지적 능력이 3살 정도다. 환이는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동아리에서 제과제빵을 만든다. 손재주가 좋고 섬세한 환이는 강사 선생님과
복지사의 칭찬이 자자하다. 환이는 관심 받는 걸 좋아하고 샘이 많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어른아이지만 순수하고 귀엽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마를 해주는 마음 착한
어른아이다. 이들에게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듣고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지체장애를 가진 동네 형이 성인으로 인식하고 환이를 아가씨들이 있는 룸살롱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처음 가 본 환이가 아무 것도 모르고 멍 하니 있으니 아가씨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왔다며 다 나가버렸단다. 미안하게 생각한 형은 화가 나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와 환이를 데리고 나이트클럽으로 갔단다. 또 처음 가 본 환이는 현란한
네온불빛과 춤추는 사람들 시끄러운 음악과 조명이 번쩍번쩍 하는 걸 보고 놀라서 형 몰래
도망 나와 119에 전화를 했단다. 구급차가 와서 환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어 무사히 왔다고
한다. 웃기고 슬픈 현실에 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 형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없는 터라 그냥 어른 대접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나는 그 형을 만나서 충분히
설명을 해 주었더니 그런 줄도 모르고 50만원이나 썼다며 씁쓸한 미소로 웃어 넘겼다.
지적 · 정신 중복장애 2급인 득이. 그는 55살로 지적능력이 5세 수준의 어른 아이다.
득이는 현란한 언어를 구사해 나는 그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모르는 게 없다. 시설에서 이십년 넘게 지내면서 라디오만 듣고 세상 물정을 모르니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순발력도 좋아 적시에 필요한 언어를 구사한다. 동네
어르신들은 득이를 ‘하교수’ 라고 부른다. 어떤 어르신이 “저 녀석 말은 다 뻥 이야” 하면
“할아버지 재밌게 해 드리려고 일부러 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대단한 순발력에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난 큭큭대며 웃음보가 터진다. 오래가지 않아 들통 나긴 하지만 말이다.
담배를 너무 좋아해 종일 들랑거리며 담배만 피운다. 동네 어귀에 앉아 어르신들께 되지도
않는 뻥을 친다. 자기가 대통령 아들이었다며 아버지가 죽고 나서 버려진 거라며 말도 안
되는 말을 쏟아낸다.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묘하게
빨려든다. 오늘도 날개 없는 천사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활동가 선생님들이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여기 나와야 박장대소 한다며 가끔 과자며 빵을 사서 나눠준다.
지적장애 3급인 신영이는 56살의 지적장애 천사들의 대장이다. 마음씨도 착하고 나누어
먹기를 좋아하는 우리 마을 천사 1호다. 이성을 좋아해 한때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져 술
먹고 울고불고 다니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는 신영이는 매일 밤 외로워서 술을 마신단다.
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고, 누이동생도 보고 싶어, 술을 마신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 한다. 해마다 부모님 제사가 돌아오면 제사상에 영정사진
올려놓고 김치와 술과 물을 올려놓고 혼자 제사를 지내는 신영이. 가슴 짠하게 내 마음을
울린다.
난 이들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감사를 배운다. 늘 주위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들이 있어 내 주위는 늘 환하다. 환이 득이 신영이. 이들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영혼이 맑은 이들이 있어 세상은 밝고 우리 마을은 맑고
환하다.
천사들이 있어 내 삶에도 희망이 생겼다. 그들은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나는 그들에게
지혜를 나눠준다. 오늘도 깔깔깔 웃음소리가 공원벤치에 울려 퍼진다. “누나, 어디가세요~”
“응 공부하러 가” “잘 다녀오셔요” 손 흔드는 천사들에게 매일매일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 이전글[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엄마의 보물」 25.04.10
- 다음글[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_「나는 마리모의 관리를 받는다, 나는 어머니의 아픈 관절, 음악은 나의 또 다른 의사」 25.04.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