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우수상 「저녁 무렵, 못 말리는 유전자,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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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 시문학 정지인
저녁 무렵
저녁 식탁에는
희망을 올리지 말라고
누군가 말했다지
하지만 나는
점심 때 보다 더
맛있게 희망을 요리하고 있어
싱싱하지 못한 재료는 잘 다듬고
쓴 맛 나는 부분은 알맞게 잘라내서
즐거운 양념으로 맛을 낼 거야
건강을 위해
저녁은 소박하게 차리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그러나 나는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들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들로
식탁을 가득 채울 거야
오늘의 마지막 식사이니까
어차피 산해진미를 먹던
죽 한 그릇을 먹던
밤은 곧 올 테니까
그리고
잠이 오기 전에 산책하러 나가야 해
그냥 집에 앉아
밤을 맞을 수는 없어
어두워져야만
비로소 반짝이는 것들을 보러 가야지
누군가에 이기심으로 가려져 있었을 뿐
한 번도 숨을 멈춘 적은 없었어
나도
식지 않은 희망 하나 꺼내
밤하늘에 붙여놓을 거야
지금은 저녁 무렵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야
뜨끈하게 감칠맛 나게
희망을 짓는 중이야
못 말리는 유전자
외식 때마다
아버지는 볶음밥을 드셨다
넘어서는 안 될 상한선이 되어버린
그 기름밥 덩어리는
그때부터
내 웬수가 되었다
정말 볶음밥을 좋아하신 건지
한도금액 초과가 불안하신 건지
알지 못했지만
선 본 남자가
볶음밥을 주문했을 때
그를 편도 우주 비행선에 태워 보냈다
정말 볶음밥을 좋아한 건지
절약형 취향 저격이 실수로 발포된 건지
알 필요도 없었지만
내가 볶음밥을 하한선으로 주저앉혔을 때도
아버지는 그 별 볼 일 없는 음식을 잡수셨다
정말 볶음밥을 좋아하신 건지
동병상련일 거라 오해를 하신 건지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내 앞에서 볶음밥을 시키는 남자가 사라진 지금
볶은 그리움 한 끼는
내 18번으로 등극했다
배고프니 아버지가 보고픈 건지
볶음밥 형 염색체의 오작동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뜯어말릴 수도 없고
햇볕에 널어도
말릴 수 없는
애틋함에 젖어 변이된
유전자 하나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나는 가슴 고프다
변증법
못보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에게도
이름이 있답니다
눈이 불편하다고
듣고만 있으라 하지 마세요
나도 말은 멋지게 할 수 있어요
물구나무 선다고
하늘이 땅이 될 수 없듯
볼 수 없다고
세상이 뒤바뀌진 않아요
나에게 힘든 오늘이 있듯이
당신에게도 힘든 내일이
올 수도 있는 거지요
마지막 출구 앞에 서서
누가 부끄러울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눈 감은 사람이라고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침내 보이는 것들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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