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대상 「그래도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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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 산문학 송수진
그래도 같이 놀자
‘뚝, 뚝’
누수였다. 오래된 빌라인 우리 집은 윗집에서 보일러를 틀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천장은 누수로 점점 거뭇하게 변색되어갔다. 남편과 나, 아이가 나란히 누워 집 천장을 함께
바라본다.“여보, 이러다가 천장이 무너질 것 같아..”
“이번년도에 이사 갈 테니까 조금만 버텨보자.”
자폐가 있는 아들은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천장에 검은색 물감 뿌려.”
미술학원을 다니는 아이의 눈에는 누수로 거멓게 썩어 들어가는 천장이 그저 검은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마냥 대수롭지 않아 보이나 보다.
오랜 친구 소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나 이사했어. 내가 집들이 초대할게. 도윤이랑 놀러와.”
며칠 뒤, 파주의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 친구 소연이를 축하해주러 각종세제와 선물을
들고 집들이를 갔다. 나 말고도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친구인 월환이도 아들 유준이를
데리고 왔다. 모든 것을 새것으로 채운 새 아파트에서 나를 맞이하는 친구의 얼굴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해보였다. 소연이와 소연이의 딸인 지효. 앞으로 두 모녀가 살게 될 아파트는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였다. 소연이는 넓고 깨끗한 거실에 예쁜 밥상을 펼쳐놓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무침, 구수한 된장찌개, 야들야들한 갈비찜, 고소한
크림오이새우, 거기에 시원한 무알콜맥주까지. 모두 군침이 돌만큼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우리는 친구의 성공을 축하하며 건배를 했다.
“그동안 아이 키우느라, 새집 사느라 고생 많았어.”
친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이렇게 아파트도 사고, 딸도 멋지게
잘 키우다니.
저녁식사가 끝나고 소연이의 딸인 지효가 그동안 공부한 영어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어책도 척척 읽고, 많은 대화들을 영어로 암기해서 쑥쑥 뱉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자식이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
“정말 잘했어, 멋지다 딸!!”
우리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소연이의 딸인 지효의 어깨는 으쓱 올라갔다.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장기자랑 시간도 끝나서 이제 오랜만에 모인 엄마들의
수다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동반해서 함께 만나면 나는 이 시간이 무척 애매해지곤
했다. 엄마인 우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괜찮았지만,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이
문제였다. 지효와 도윤이는 둘이 만나서는 잘 놀았지만, 다른 아이가 끼어서 셋이 되거나
넷이 되면, 예전부터 함께 어울리는데 어려움이 많이 생겼었다. 자폐가 있는 도윤이는
발달이 느렸다. 함께하는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하는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잘 어울려달라는
것은 어린아이인 지효와 유준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씁쓸하지만 난 그런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고, 아이가 소외되는 것을 못
본 척 넘어가거나 도윤이가 혼자 할 만한 것들을 손에 쥐어주고, 혼자 놀게 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같이 만나도 결국은 혼자 노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폐가 있는 아들은 아이들과 한 공간에만 있어도 함께 놀았다고
생각했다. 누나 형들을 무척 좋아하고 또 만나고 싶어 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참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매번 고민을 안겨주는 부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우리가 자주 못
만난 사이 아이들도 커서, 이제는 고학년이니까 함께 어울려도 괜찮겠지.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조금은 안일하게 생각했다.
엄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 거실 옆에서 지효와 유준이는 메모리카드 게임을 시작했고,
도윤이는 아이들이 노는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서 함께
하지는 못했고, 그러다가 심심했는지 관심을 끌고 싶었는지
“티라노 사우르스!”
“파키케팔로 사우르스!”
공룡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방해했다.
지효가 아끼는 알파카 인형을 깔아뭉갰고, 아이들은 하지 말라고 도윤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크! 역시 또 시작이 되었구나.’ 생각하고 도윤이에게 말했다.
“도윤아 엄마랑 엄마 차에 가서 공룡카드 가져올까? 심심하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반가웠고 집들이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친구들과의 대화를
끊고, 아들을 달래서 밖으로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더 놀고 싶어요. 집에 가기 싫어요.”
“도윤아 집에 안 갈게, 차에 공룡카드 가지러 가는 거야.”
“같이 놀고 싶어요. 지효누나 좋아.”
“도윤이가 자꾸 누나 형 노는데 방해하잖아.. 안 그럴 거지?”
“슬펐어, 서운해, 속상해요.”
도윤이의 툭툭 내뱉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들도 그 사이 많이 큰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울어요.’ 라는 말밖에 못했었는데,,
누나 형이 자신을 빼놓고 둘이 논다는 것을 어릴 때와 다르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아
다 알게 되었구나. 그럼 앞으로 슬플 일이 더 많을 텐데. 아들아.
“도윤이 속상했구나.. 괜찮아. 그래도 누나 형이 도윤이 크면 같이 놀 거래. 엄마랑 공부
열심히 해서 말도 잘해서 형 누나랑 재밌게 놀자. 알겠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고 해서, 그리고 도윤이가 말을 더 잘하게 된다고 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우리가 집에 가는 줄 알았는지 지효가 문을 열고 나와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내밀었다.
“이모 도윤이 이거 가지고 놀라고 해요.”
“고마워, 이모 도윤이랑 차에 공룡카드 가지러 잠시 다녀올게.”
“네, 이모.”
함께 노는 법을 모를 뿐이지, 지효도 나쁜 아이는 아니다. 분명히 가해자는 없는데,
상처받고 속상한 사람만 있다. 난 정말 이런 상황이 싫다. 땡. 곧 엘레베이터가 도착했고
나와 도윤이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덩달아 기분도 더 다운되었다.
“도윤아, 우리 그냥 집에 갈까? 재미없지?”
“싫어요. 더 놀 거야.”
“누나 형이 도윤이랑 같이 안 놀잖아. 그래도 괜찮아?”
“같이 놀아요~~.”
“알겠어. 도윤아.”
오늘도 결국 내 아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구나. 씁쓸하다.
정말 이 상황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어. 그래도 뭐 아들이 괜찮다고 하니까
긍정적이게 생각해보자!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공룡카드를 가지고
다시 친구 집으로 올라갔다.
고작 몇 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거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엄마들은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파카 주세요!”
도윤이는 또 지효가 아끼는 알파카 인형을 찾으면서 이리저리 뛰었다. 도윤이는 무엇에 한
번 꽂히면 정말 질릴 때까지 계속 말한다. 당해낼 수가 없다. 인형을 찾다가 지효의 방문이
잠겨있는 것을 알게 됐다. 잠겨 있는 방 안에 알파카 인형이 있다. 도윤이는 방문을 세게
잡아 당겼다.
“하지 마!”
방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지하주차장에 내려간 사이
아이들이 방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린 것이다.
“야, 너희들 문 열어.”
나는 기분이 나빠서 소리쳤다. 아이들은 방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이모가 문 열라고 했어. 빨리 열어.”
아이들이 긴장하며 거실로 나왔다.
“야, 심지효 너 이리로 와 봐. 넌 도윤이 다 알면서 왕따를 시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이에게 매섭게 호통을 쳤다.
지효는 무서워서 눈물이 터졌고, 나는 점점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진짜 한두 번이야!! 진짜 못 참아!”
“그건 네 감정이야. 왜 아이들한테 소리를 질러.”
월환이가 화내는 내게 경고를 했다.
“내 감정인거 아는데 진짜 짜증난다고!!. 야 김도윤 너 빨리 나와 집에 가게”
“왜 이러고 가. 너 차에 가서 감정 좀 가라앉혀.”
“나 집에 갈 거야. 김도윤!! 나오라고!!.”
“더 놀 거예요!! 안 갈래요.” 도윤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속도 모르고 아들은 집에 안 간다고 울고, 지효도 울면서 아기처럼 엄마인 소연이의
품에 안겼다, 재밌고 화기애애했던 집들이는 순식간에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나의 분노로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복도에서는 내 울음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나는 울음을 삭히고 지하로 내려와 차 안에서 크게 소리치면서 울었다.
몇 분이 흐른 뒤, 좀 머쓱했지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집에 갈 거야. 도윤이 지하로 내려오라고 해.”
“도윤이 딸기 먹고 있어. 너도 이제 올라와.”
“나 눈물이 안 멈춰. 못 가겠어.”
“좀 더 시간 줄까?”
월환이의 다정한 말투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다친 마음이 녹아내린 것이다.
더 큰 왕방울만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성장은 이렇게 늘 다정한 사람들 덕분이다.
어른인 내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화내고 호통 치는 건 내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 어른이면 아이에게 더 다정해야 했는데,, 몰라서 그런 것이니 알려주면 되는
거였는데,, 아직도 난 미숙하다.
전화를 끊고 차에서 도윤이를 기다린다. 나는 매번 아이를 치료실 위로 올려 보내고 차
안에서 기다리는 엄마. 대기하는 엄마였다. 오늘은 상황이 바뀌었다. 도윤이가 나를 위에
층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우느라 올라가지를 못한다.
우리 자신이 구석에 몰려 있다고 본다면 길은 위로 가는 것 밖에 없다. 어린 아이들처럼
되어 근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나를 계속 올라오라고 재촉하고 응원하는 내
친구. 그런데 나는 위로 올라갈 용기가 없다.
울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아주 어렸을 때 월환이가 내가 모르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재밌게 노는 모습이 질투가 나서, 나 혼자 화를 내고 다른 골목으로
갔었다. 나는 낯선 동네에서 갑자기 길을 잃었고, 혼자 방황했다. 한참 골목을 돌다가
나를 찾고 있는 월환이와 친구들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서 엉엉 안겨서 울었다. 월환이는
우는 나를 그냥 안아줬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월환이의 새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놀았었다.
월환이가 도윤이를 데리고 내 차로 왔다.
“똑똑똑, 수진아, 도윤이가 자고 싶대.”
“이모 미워요. 나빠” 도윤이가 월환이에게 말했다.
“이거 봐, 이제 도윤이가 다 안다. 다 알아.” 월환이가 놀라며 말했다.
“도윤아 너 왜 이모 미워?”
“왜 밉겠어. 내가 아까 너한테 소리 질러서 그렇지..”
“도윤아, 너 진짜 많이 컸구나.” 엄마인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컸다.
“우리도 어려워. 그래도.. 알지?”
“응 다 알아..”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연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해.. 보고 싶어서 간 건데..”
“괜찮아,, 내일 또 놀자. 마음 풀고 코 자.”
상처받고, 고립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방법이다. 그저 탓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이의 장애 앞에서 난 누구를 미워해야할지 모르겠다.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들의 친절함에 나를 새집에 초대하고 밥까지 차려준
친구의 수고가 생각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식당에서 만난 지효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내게 달려왔다.
“이모~~~ 우유가 쓰러지면 뭐게요?”
“음,, 뭘까? 우유가 다 쏟아져.”
“땡! 정답은 [아야] 예요!
”아~~ 아야!! 진짜 웃기다. 아야라고? 하하하.“
지효의 퀴즈에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야!’ 하고, 아프다고 외치며 쓰러졌던 나를
다시 웃음으로 일으켜 세운 순간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처럼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장애인 아이와 같이 노는 방법을 잘 아는 어린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함께 장애·비장애 아이들과 어울리며 함께 노는 방법을 찾아가야겠다. 슬프고 아파도
그래도 같이 놀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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