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캔디의 바리스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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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의 바리스타 도전
가 작-산문학 송인숙
나는 나를 캔디라고 이름 지었다. 만화 주인공 캔디가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듯 나도 장애 입은 것을 원망하고 한탄하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캔디처럼 씩씩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캔디가 되기로 한 것이다.
2005년 4월 21일 운명의 날
캔디는 일본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 중에 과로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본 도쿄의 제일 큰 대학병원에서 6시간 걸려서 뇌수술을 하고 3개월 만에
의식이 돌아왔으나 뇌압이 안 차서 중환자실에 6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비행기를
타도 좋다는 의사 소견에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캔디 모녀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캔디는 7 년 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재활치료를 받았고 그동안 캔디의 소중한 딸 은지는 엄마 병상 보조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중학교 3학년을 다녔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소중한 딸은 내신 성적이 부족해 인문계를 못 가고
경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짝꿍을 잘 만나서 친구네 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지금도 두 가족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음을 늘 감사히 생각한다. 그
친구도 엄마 혼자서 딸 둘을 키우는 가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지를 딸처럼 잘
돌봐 주셨다. 입원한 환자들이 토요일이면 다들 집에 가지만 캔디는 집이 없어 늘 혼자
병실을 지키곤 했다. 혼자 6인 병실에 있으니 텅 빈 병상 침대가 무서워서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보고 눈물 흘린 적이 너무 많았다.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어 퇴원을 하고
싶었지만 앞이 막막했었는데 정부의 지원으로 아파트와 활동가 여사님 그리고 생계비
등을 도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캔디는 집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이쁘고 착한 딸이랑 침대에 꼭 붙어 안고 잠을 자면서
행복이 이런 거구나, 집이 생기니 우리 모녀는 얼굴을 마주 보고 잠잘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비록 식탁을 놓을 자리가 없었지만 침대에 조그마한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아 김치와
김만 놓고 밥을 먹어도 행복했다. 그런 캔디에게 이쁘고 착한 딸이 늘 옆에 있어줘서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됐다. 사랑스러운 딸에게 캔디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캔디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행복한 글짓기 수업을 듣기로
했다. 열심히 수필도 쓰고, 시도 쓰고, 이쁘고 착한 딸 생일날 마음을 담은 손 편지도
써주고 그런 중에 평생교육 프로그램에서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연 왼쪽 편마비 장애인 캔디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생각만 하다가 용기를 내어 복지관 담당 복지사님께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까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조금만 걸을 수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말에 신청을 하게 되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기다리던 중에 코로나19로 수업이 한 달 연기되어 아쉬웠다.
드디어 5월 7일 첫 수업 시작.
설레는 마음으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복지관으로 갔다. 입구부터 마스크 착용
확인에 발열체크에 방문 일지에 복잡했다. 3층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부 마스크
착용으로 목소리랑 눈으로만 인사를 했다. 젊은 20대, 30대 지적장애인이 반 이상이고
지체장애인이랑 뇌병변장애인 등 많은 수강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캔디가 중증 심한
장애인인 것 같아 보였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지적 장애인들은 목소리도 크고, 선생님
말씀에 질문도 많고, 한곳에 앉아 있지도 않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니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캔디는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필기도 했다. 커피란 7~8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한국사를 잠깐 살펴보면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의 선교단 보고 기록에 최초로 나오는데 개항지 인천에 세워진
대불호텔에서 커피를 판매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던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남의 처형인 독일인 손탁이 운영하던 손탁호텔에서 커피가 일반
공개되었으며, 192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인 이견 다방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한국사를 알게 되니 더욱 흥미가 생겼다.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원두커피의
보급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서식품에서 커피 2, 프림 2, 설탕 3의 배합으로
세계 최초로 믹스 커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5월 한 달 동안 필기 수업을 마쳤다.
6월부터는 핸드드립과 커피 머신을 이용해서 에스프레소 추출하는 실습이다. 6월 첫째
수업 시간 테이블 위에 서버랑 드립퍼랑 핸드드립 주전자랑 종이컵이랑 세팅이 되어
있었다. 오늘 원두커피는 콜롬비아 세화도 커피였다. 핸드드립 준비 서버 위에 드립퍼를
올려놓고 드립퍼 안에 종이 필터 넣고 종이 필터 안에 원두커피 가루를 두 스푼 넣고
핸드드립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옆자리 지적 장애인 지웅이란
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불편한 나를 대신해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줘서 정말 고마웠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준비된 핸드드립 커피가루 위에 물을 바깥쪽부터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4번 붓고 커피가루가 달고나 할 때처럼 부풀어 올라오면 다시 물을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부어 200CC까지 부어주고 드립퍼를 다른 곳으로 옮겨서 분리한다.
핸드드립 커피를 종이컵에 따라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소리 내어 호로록 마시고
혀 안쪽 끝부분까지 맛을 음미한다. 이번에는 커피 머신 원두를 자동 분쇄기 통에 넣고
레버를 힘차게 당기면 커피가루가 나오는데 이때는 한 손으로 커피 분쇄기 가루 나오는
구멍에 필터를 맞춰서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레버를 당기면 원두가루가 나온다. 하지만
난 양손을 쓸 수 없어 처음에는 내 뒤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매번 친구에 도움
받는 게 싫어서 머리를 썼다. 커피 분쇄기를 내 몸 쪽으로 당겨 와서 호타 필터를 내 배에
고정시키고 숨을 꾹 참고 레버를 당겨서 커피가루 받는 데 성공했다.
애고, 숨을 휴~~ 하자 내 배가 들어가면서 호타 필터가 엎어져서 내 발등에
커피가루가 왕창 쏟아졌다. 너무 아까워서 이걸 어쩌나 하고 당황하는 내 모습에
선생님께서 “괜찮아요.” “커피 가루잖아요.” “신경 쓰지 말고 연습하세요.” 강사 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내서 다시 도전할 때는 숨을 꾹 잘 참고 해서 두 번째는 성공했다. 양손
쓰는 사람은 템포로 호타 필터에 담긴 커피가루를 톡톡 쳐서 눌러야 하나 난 양손을 쓸
수 없어서 자동 커피 누름 기계를 이용해야 했다. 평평하게 만들어 템포로 꾹 눌러서
커피 머신에 끼고 돌려서 고정시킨다. 그다음 에스프레소로 잔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버튼 누르고 20~25 숫자 세고 끄면 에스프레소 커피가 추출된다. 에스프레소 잔을
치우고 호타 필터를 돌려서 빼고 넛박스(커피 찌꺼기 버리는 통)에 버리고 호타 필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서 커피 머신에 끼워서 돌려서 고정시키면 마무리가 된다. 내가
추출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커피를 입에 대고 소리 내어 후루룩 혀끝까지 닿게 마시면서 커피 맛을 음미한다.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고 커피 향이 좋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잠들었다. 많이 마시면 잠 못 자고, 버리자니 아까워 텀블러에 담아왔다. 집에
가져와서 이쁘고 착한 딸도 주고 옆집 민 언니네 가서 같이 나눠 마셨다. 세계 여러
나라의 맛있는 커피를 맛보게 해줬더니 모두가 좋아했다. 몸이 불편한 엄마가 뭐든지
도전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는지 이쁜 딸은 엄마 최고라고 하며 아주
좋아했다.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에 캔디는 아주 기뻤다.
이번에는 우유 라테랑 곡물 라테 만들기 수업이다. 우유를 피처에 따라서 스팀 기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레버를 올리고 내리고 등의 과정을 거쳐 우유 스팀을 하면 순간
과열로 우유에 거품이 생기면서 우유가 따뜻해진다. 모든 과정이 한 손이 부자연스러운
캔디가 감당하기엔 힘들었지만 지웅 친구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업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잘 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과정이었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참으로
고맙다. 우유 라테 만드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었다. 우유가 커피 속으로 들어가
크레마를 밀어내면서 하트 모양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아트가 된다. 예술가가 된
기분이었다. 첫 작품을 만드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서 우유를 빨리 붓는
바람에 하트 모양이 뚱보 하트가 되어 당황했으나 다시 도전. 마음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해서 이번에는 성공! 이쁜 하트가 나와 칭찬과 박수를 받았다. 캔디는 사진을
찍어 딸에게 자랑했다. 이뻐서 마시기 아까웠다. 내가 만든 라테를 마시면서 캔디가
뭔가를 해냈구나하는 마음에 뿌듯했다.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하지만 캔디는 나이도 있고 왼쪽 손도 전혀 못 써서
자격증 시험을 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고 실습한 것으로
만족하며 8월 6일 복지관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바리스타 SCAE과정 수료증을
받았다. 강사 선생님께서 수업생 중에 장애가 심한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수고했다고 하시며 박수를 쳐 주셨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캔디는 자신감도 생기고
가슴이 벅찼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므로
장애인들도 여러 가지를 배우고 도전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프로그램을 수료할
때마다 자존감이 높아지며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장애인
복지관은 우리들의 삶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고맙고 소중한 곳이다. 도전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이 있어 고맙고 나를 지지하는 나의 소중한 딸이 있어
행복하다. 장애가 있는 다른 장애인들도 용기 내어 도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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